8월 11일 서울 가양동 영구임대 아파트 화재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와 이를 대피시키던 아들이 함께 숨졌다. 불이 난 건물은 1992년 지어져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이런 노후 영구임대주택 상당수가 화재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파트에 갖춰야 할 대피시설의 기준과 그 기준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정리한다.
8월 11일 오후 4시 55분,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 15층 세대에서 불이 났다. 이 세대에 살던 61세 어머니와 38세 아들이 함께 숨졌다. 소방 당국은 뇌병변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아들이 피신시키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같은 건물의 다른 주민 40명은 화재 직후 스스로 대피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이 사고의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가 생사를 갈랐기 때문이다.
불이 난 아파트는 1992년에 지어진 영구임대 아파트로, 내부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는 개별 세대의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건물 자체의 안전기준과 맞닿아 있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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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의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기준은 단계적으로 강화돼 왔다. 2004년에는 16층 이상, 2005년에는 11층 이상, 2018년에는 6층 이상 전체로 대상이 넓어졌다. 문제는 이 기준이 원칙적으로 새로 짓는 건물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노후 주택은 소급 적용의 사각지대로 남는다. 1992년 준공된 가양동 아파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 결과 영구임대주택의 약 90%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간이형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인 영구임대주택 14만3167호 가운데 지난해 말까지 실제 설치가 끝난 곳은 단 6호에 불과했다. 통계도 위험을 뒷받침한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LH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1262건, 사망자는 34명이었는데 이 중 18명, 절반이 넘는 53%가 영구임대주택에서 나왔다. 임대아파트의 화재 사망률은 일반 아파트의 약 두 배 수준이다.
스프링클러 외에도 아파트에는 여러 피난·대피시설 기준이 있다. 4층 이상인 층의 발코니에는 옆 세대로 피할 수 있도록 경량칸막이(경량구조 경계벽)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두께 9mm 안팎의 석고보드로 만들어 발로 차거나 두드려 부수고 이웃 세대로 넘어가는 구조다. 대피공간은 방화문으로 구획해 일정 시간 구조를 기다릴 수 있게 만든 공간이고, 하향식 피난구는 발코니 바닥을 열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로 대피실 면적 2㎡(2세대 이상은 3㎡) 이상, 하강구는 직경 60cm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완강기와 같은 피난기구는 3층부터 10층까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 시설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거주자가 스스로 몸을 움직여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량칸막이를 부수려면 힘이 필요하고, 완강기에 매달려 내려오거나 피난 사다리로 층을 이동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이 모든 장치가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깝다. 가양동 사고에서 다른 주민들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와 그를 도우려던 아들이 변을 당한 것은 이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현행 대피시설 기준은 '자력 대피'를 기본값으로 삼고 있어, 그렇지 못한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영구임대주택에서 오히려 취약해진다.
LH는 2030년까지 노후 영구임대주택에 간이형 스프링클러 설치를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올해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97개 단지 약 1만5000가구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단지에서만 설치가 가능해 상당수 세대는 설치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이 났을 때 스스로 대피하기 어려운 주민이 많은 건물일수록, 화염을 초기에 잡아주는 스프링클러와 자력 대피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 설비가 더 절실하다. 가양동 화재는 대피시설 기준을 '누가 그 시설을 실제로 쓸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