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페스트 방역연구소 연구원이 중증 폐렴으로 숨졌지만 러시아 당국은 페스트균 음성으로 발표했다. 폐페스트는 사람 간 전파되는 유일한 형태이나 약 1.8m 이내 밀접접촉이 필요하고 조기 항생제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다. 국내 자연 발생은 사실상 없으므로 출국 예정자는 질병관리청 해외감염병NOW와 외교부 여행경보를 확인하면 된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시베리아·극동 페스트 방역연구소에서 일하던 28세 연구원 다리야 시필로바가 9월 29일 중증 폐렴 증상으로 입원한 뒤 10월 2일 숨졌다. 러시아 소비자권익·보건감독청은 10월 6일 성명에서 격리 대상자의 약 60%를 검사한 결과 페스트균은 나오지 않았고 코로나19 2건과 리노바이러스 2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은 러시아에 "제때,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직 폐페스트로 확진된 사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페스트 방역연구소'라는 장소와 사망이라는 결과가 겹치면서 공포가 번졌다.

Yuri Shkoda
페스트는 흔히 '흑사병'으로 불리는 그 병이 맞다.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감염되는 형태에 따라 림프절(가래톳) 페스트, 패혈증 페스트, 폐페스트로 나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폐페스트는 균이 폐에 자리 잡은 경우다. 발열과 오한으로 시작해 기침, 호흡곤란, 가슴 통증이 빠르게 나타나고 피 섞인 가래가 나오기도 한다. 증상만 보면 중증 폐렴과 구분하기 어렵다.
치명률은 형태에 따라 다르다. 림프절 페스트가 5~15%인 데 비해 폐·패혈증 페스트는 30~50%로 훨씬 높다. 폐페스트는 치료하지 않으면 거의 사망에 이른다.
페스트의 기본 감염 경로는 페스트균을 가진 쥐벼룩에 물리는 것이다. 그런데 폐페스트는 세 형태 중 유일하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는다.
감염자가 기침할 때 나오는 비말을 가까이에서 들이마시면 전파될 수 있어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사람 간 전파가 일어나려면 환자와 약 1.8m 이내에서 밀접하게 접촉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코로나19처럼 스치듯 지나가며 퍼지는 병이 아니라는 의미다. 폐페스트의 잠복기는 대개 1~3일로 짧은 편이어서 노출 여부를 비교적 빨리 가늠할 수 있다.
무서운 수치 뒤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치료하지 않으면'이다. WHO는 폐페스트를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 발현 후 18~24시간 안에 사망할 위험이 거의 100%라고 경고한다.
뒤집어 보면 시간이 생명이다. CDC는 첫 증상이 나타난 뒤 24시간 안에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본다. 스트렙토마이신, 겐타마이신, 테트라사이클린 계열 항생제가 효과가 있고, 적절히 쓰면 길어도 2주 안에 완치가 가능하다.
즉 폐페스트는 '걸리면 끝'인 병이 아니라 '늦으면 위험한' 병에 가깝다.
국내에서 자연적으로 페스트가 발생한 사례는 사실상 없다. 페스트는 제1급 법정감염병이자 검역감염병으로 지정돼 공항·항만 검역과 즉시 신고 체계가 작동한다. 지금 러시아 상황만으로 국내 감염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해외 출국을 앞두고 있다면 불안보다 확인이 먼저다. 다음 정도만 점검하면 된다.
러시아 연구소 사건은 아직 원인이 '불명'인 상태이고, 페스트균 검출은 음성으로 발표됐다. 확정된 유행이 아니라 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란에 가깝다는 점을 구분해 두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