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을 피해 피신한 아내가 이혼 소장에 적힌 주소로 남편에게 추적당해 살해됐다. 접근금지와 피해자보호명령 같은 보호제도는 있었지만, 정작 주소가 새는 경로를 막는 절차는 피해자가 스스로 찾아 신청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피신을 준비한다면 주민등록 열람·교부 제한과 소송 서류의 주소 처리부터 확인해 두는 것이 현실적인 대비다.
경기 광주시의 한 다세대주택 계단에서 2026년 9월 1일 아침,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떠났던 아내가 남편에게 목숨을 잃었다. 남편은 현직 공무원이었고, 아내가 옮겨 간 주소는 두 사람이 진행하던 이혼 소송의 소장에 그대로 적혀 있었다. 유족은 아내가 주소가 노출된 걸 알고 "너무 무섭다"며 울면서 전화했다고 전했다.
몸은 피신했지만 피신처를 가릴 장치가 없었던 셈이다. 이 사건이 남긴 질문은 하나다. 피해자를 지키는 제도는 분명히 있는데, 왜 이번엔 작동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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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가 쓸 수 있는 신변보호 수단은 크게 세 갈래다.
첫째는 접근금지다. 경찰이나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임시조치, 급할 때 경찰이 먼저 취하는 긴급임시조치가 여기 해당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거·직장 100미터 안으로 오지 못하게 하고 전화·문자 연락도 막는다. 다만 피해자가 직접 신청하는 게 아니라 수사기관이 판단해 청구하는 구조다.
둘째는 피해자보호명령이다. 가정폭력처벌법 제55조의2에 따라 피해자 본인이나 법정대리인이 수사 진행 여부와 상관없이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있다. 접근금지뿐 아니라 가해자를 집에서 내보내는 격리, 친권·면접교섭권 제한까지 담을 수 있고 기간은 최대 1년, 연장하면 최대 3년까지 간다. 결정 전이라도 급하면 임시보호명령으로 먼저 막을 수 있다.
셋째가 이번 사건의 핵심인 주소 감추기다. 피해자는 주민등록법 제29조에 따라 자신의 주민등록 열람·등초본 교부를 제한해 달라고 시·군·구청에 신청할 수 있다. 상담소나 긴급전화센터가 발급한 상담사실확인서 같은 증거서류를 내면 된다. 위험이 크면 주민등록번호 변경도 신청 대상이다.
세 갈래를 누가 움직이는지로 나눠 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 제도 | 청구 주체 | 핵심 내용 |
|---|---|---|
| 임시조치·긴급임시조치 | 경찰·검찰 | 100m 접근금지, 연락 차단 |
| 피해자보호명령 | 피해자 본인·법정대리인 | 격리·접근금지, 친권 제한(최대 3년) |
| 주민등록 열람제한 | 피해자 본인 | 주소 노출 자체를 차단 |
접근금지가 가해자를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주민등록 열람제한은 애초에 '어디 있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마지막 장치가 뚫렸을 때 앞의 둘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보여줬다.
이번 사건에서 무너진 건 접근금지가 아니라 주소였다. 아내는 수원에서 광주로 거처를 옮기며 몸은 숨겼지만,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서 소장에 새 주소가 적혔고 그 서류가 남편에게 송달됐다. 주민등록 열람을 제한해도 재판 서류에 주소가 들어가는 통로는 따로 막지 않으면 열려 있다.
언론이 지적한 대목도 여기다. 주소를 가리는 법적 절차가 없는 게 아니라, 평범한 피해자가 그 절차의 존재를 알고 제때 신청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스마트워치 같은 신고 장치가 있어도 범행이 순식간에 벌어지면 소용이 없고, 직장과 아이 어린이집에서 멀리 떨어진 임시거처는 일상을 포기하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여러 주가 피해자에게 아예 대체 주소를 부여하고 소송 서류까지 그 주소로 받게 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과 대비된다.
피신을 준비 중이거나 이혼 소송을 앞두고 있다면, 몸을 옮기는 것과 별개로 주소가 새는 경로를 먼저 막아야 한다.
제도가 있다는 것과 그 제도가 내게 닿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번 사건은 그 간극이 사람 목숨과 맞닿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